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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7 먹튀검증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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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無我之境). 먹튀폴리스 네 개의 한자를 순식간에 농염에 젖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는 몰라도 네겐 쉬운 일이다. 네 앞의 내가 그 한자이니.
"조금만 벌릴게.""앗...""괜찮아.""...!""놀라지 마. 나야."
손길을 받는 몸이 황송할 따름이다. 너는 눈으로, 손으로, 입술로 나를 사랑한다. 발칙하다 싶을 정도로 진중하게 밀고 다가오는데 당연히 거부할 수는 없다. 이유는 모른다. 알면 안된단다, 내 자존심이.
"고개 들어봐."
다른 건 봐주면서도 눈을 감든 고개를 틀든 어떻게서건 시선이 어긋나는 건 못마땅해한다. 그게 훨씬 더 낯뜨거운데,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고 요구하는 건진 모르겠다. 그냥 하랄 때 하면 괴롭히지 않으니 고분고분히 턱을 드는 것이다. 역시나 실오라기 같은 장애물 하나 없이 제대로 눈이 마주쳤다.
"옳지."
깜깜한데 왜 쟤는 빛이 나나 모르겠다. 태양이라 그런가, 눈부시게 환하다.
그래서 그런가. 눈물이 찡하도록 뜨겁다.
"으, 아! 아파...""착하지..."
넌 나빠, 이 새끼야. 울먹이면 조용하게 웃는다. 무엇에 젖었는지 모를 손이 내려와 머리카락과 볼을 쓸었다. 그 바람에 얼굴로 투명한 액체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눈꺼풀을 찡긋하니 이불을 짚던 다른 쪽 손을 가져와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그 자그마한 손길은 정말 그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단 걸 느끼게 했다. 아무래도 둘 다 남자다보니 깔리는 입장으로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데, 지호는 경이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게끔 요구에 순종하고 다정스럽게 굴었다. 평소 행실을 생각한다면 기가 막힐 정도로 배려있는 것이었다.물론 순종은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아이컨택)가 충족돼야 나타난다. 그게 경이 고개를 들으란 소리에 꼼짝할 수 없는 이유였다. 누구에게나 오만한 그를 완전히 차지하기 위한 필수단계였으니.
볼을 닦은 손을 대신해 침대를 짚고 지호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손에서는 촉촉한, 은근히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귓가 지척에서 들린 이불 구겨지는 소리에 흘끔 눈을 굴렸다가 화르르 얼굴을 붉혔다.
너무 야하다.
눈가 바로 옆에 흥건하게 젖은 섬섬옥수가 있다.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천천히 이불을 적시는...
"왜?"
지호는 키득거렸다. 그가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순간순간을 포착하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더 놀려주고 싶어서 스윽 손을 들어올렸다. 그 덕에 손바닥을 타고 흐른 액체가 조각처럼 굴곡진 손목 뼈를 끈적하게 굴러내려왔다.
"....."
경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하며 눈을 도로록 굴렸지만 곧 충동을 못 이기고 고갤 들어 그 줄기 끝에 맺힌 물방울을 보았다. 장미같이 새빨간 입술 사이로 들어간 그것. 선홍빛 혀가 나른하게 핥았다. 사나운 눈은 그걸 보며 반응하는 제 얼굴을 뭐 하나 놓칠세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그 시선을 느끼고 나니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 꾹 눈을 감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지호는 아쉽다는 듯이 눈썹을 내리고 말꼬리를 늘렸다.
"왜애... 봐야지."
저거 저거, 나쁜 놈이야.
절대 못 그러겠어서 이 악물고 버텼더니 쾌감 혹은 흥분을 못 견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을 내려놓고 지그시 바라보던 지호는, 장난을 관두고 퍽 선심 쓰는 얼굴로 상체를 내렸다. 공기 하나 지나갈 틈 없이 밀착시키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가여워서 이거..."".....""놀릴 수가 있어야지."
몸이 그런 것처럼 귓가에 밀착된 입술이 숨소리의 온기와 함께 평온한 목소리를 전했다. 이불만 잡고 부들거리던 손을 허공으로 뻗어 지호의 목을 감았다. 완전히 몸끼리 감겼다. 슬림한 몸에 박힌 잔근육이 느껴졌다.
쪽 쪽 볼에 입술을 찍는 게, 진정. 진정. 달래는 낮은 목소리를 닮았다. 그의 타이름 대로 격양되었던 숨을 천천히 고르고, 가까이 닿은 귓바퀴에다 반가운 편지에 답장하듯 살짝 입을 맞추었다. 지호는 살그머니 웃었다.
"한번 더 해줘."
뭐, 네가 원한다면. 귓바퀴의 피어싱을 피해 귓볼 쪽에 한번 더 입을 맞추었다. 부르르 턱을 떤다. 그 반응도 좋고 감촉이 젤리처럼 말캉해 용기내어 물어도 보았다. 간지러운지 지호는 큭큭 웃었다. 가까이서 웃음소리가 닿아 경도 반사적으로 입가 근육을 풀었다.&nbsp
"간지러워. 너도 해줄까?""됐네. 지금도 충분히 돌아버리겠거든..?"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지호는 눈앞의 목덜미에 머리칼을 부볐다.
"난 괜찮은데.""내가 너 덮칠지도 몰라.""와우, 환영이야.""내가 안 환영이야. 결국엔 어차피 뒤집히잖아.""안 환영은 뭐람."
짤막한 대화도 나누고 지금 상태를 묻고 하던 지호가 다시 두 팔로 침대를 짚고 일어났다. 내려올 때처럼 어느 곳을 찔러 갸르릉, 신음했다. 지호는 두 손가락을 벌려 콧잔등을 꼬집었다. 그리 힘이 들어간 손짓은 아니었다.
"백날 사이코메트리 해봐. 너는 내 기분 절대 몰라.""윽. 잠,시만...""뭐 훔쳐본 사람이나 조금 알까... 그래도 다는 모를 걸."
세상에 너보다 귀한 게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가 무슨 로맨틱한 말을 했는지보다 백날 잔영을 읽어봐야 넌 모를 거라는 소리에 오기가 생긴 경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불을 구겨쥐었던 손을 지호의 허벅지 근처로 가져갔다.
"하아."
후끈. 가슴이 더워지며 앞에 있는 걸 마구 물어뜯고 싶어졌다. 누가 뭐래도 성격이 분명하다. 성욕이다. 검은 눈동자에 경의 것과는 성질이 다른 열기가 띄자 지호는 걸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쇄골에 입술을 묻었다.
아윽! 똑같이 일어나 지호의 목을 물었던 입이 하늘을 향해 벌어졌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머리도 풀썩 베개로 떨어졌다. 눈앞이 새까맣고 숨이 가프다. 그저 가까이 머무는 팔에 의존해 매달리자 허리 아래로 단단한 팔이 감싸왔다. 조금 편해져서 박자를 따라 간헐적으로 호흡했다.
흔들리는 하늘엔 너 하나 동그랗게 떴다. 달이 기울어도 눈이 부셔서, 결국엔 감게 되었다. 이제는 잠들어도 먹튀폴리스 억지로 뜨게 하지 않는다. 후끈하게 젖은 머리를 쓸어주며 잘 자라 인사하고 옆에 눕는다. 한 마리 경비견이 이불을 덮어준다. 볼에 촉촉하고 말캉한 게 닿았다 떨어졌다.



눈을 떴다. 사실 감은지도 얼마 안 됐다. 물끄러미 달빛이 내려오는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맨 처음 쥐도 새도 모르게 각인당했던 얼굴. 호흡. 이 방에서 숨을 함께하는 사실조차 감격하게 만든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익숙하게 자리잡게 되니 별 별 생각이 다 드는데, 그 중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할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형사가 아니었음 퀴어 쪽 클럽에서 이름 날릴 물건이다.
거친 범죄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고 강렬해지는 눈빛 하며, 평소 쉴 땐 콕콕 볼을 찔러보고 싶은 나른한 표정. 가끔 혼자서 감당하기 벅찬, 이를테면 헤이화 두목과 같은 위험인물을 만났을 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며 저를 찾는 눈빛이 애처롭다. 상실감이 내려앉은 초연한 얼굴도, 저를 보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도, 밤에 말갛게 반들거리는 눈동자도. 모두 VVIP회원이 누리는 특급 호사 같았다. 허나 절대로 공유하고 싶지 않은 대상. 제 것을 받느라 힘겨워하던 마른 등근육과 날개뼈의 움직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깨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낮춰 불러보았다.
"자냐?"
네가 자는 모습은 내겐 특히 특별하다. 악몽에서 도망쳐 온 너를 지키는 게 소임이니까. 한때는 식은땀에 범벅이 되어 울게 하던 바이오리듬.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렇게 오기까지 이끌었던 내게 네 자는 얼굴은 자랑스런 상이다.
자랑스런 상. 그래도, 패물로 너를 간직하는 건 싫어.
"내일 봐."
너는 내 순간으로. 기억으로.
살아 숨쉬는 가치관으로 영원하길 빈다. 너에게 묻는다. 지금 좋은 꿈 꾸냐고.





노란 폴리스라인 아래로 허리를 숙였다. 경이 들춰준 곳을 잡고 뒤따라 들어온 민혁이 복잡하게 몰려들어 우글거리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대박이라며 SNS에 올리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그의 심기에 쿡 작대기를 찍었다."구경거리 아닙니다! 저리 가세요!"
단호하지만 적잖이 화가 담긴 목소리였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웅성대는 이들을 회색 제복의 순경들이 막아섰다. 경은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고 시신 근처에서 상태를 보는 민혁의 옆에 가 섰다. 고인에 대한 예의를 망각하고 코를 싸매쥘 뻔했다.
"피 양 좀 봐...""이 정도면 쇼크 오기도 전에 갔겠는데... 피해자 신원 확인됐어요?""아뇨, 지문이 훼손돼서.""그래도 얼굴이랑 소지품 보면 뭐 나왔을 거 아니에요.""그게... 보십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손이 시신을 덮은 천의 머리 부분을 들추었다. 경의 뒤에서 인파를 막던 순경이 흘끔 그것을 보았다가 우욱 토악질을 했다.
"....."
젋다. 경은 절로 찌뿌려진 미간으로 시신을 응시했다. 호흡기를 찌르는 악취와 뇌리에 박힐 만큼 충격적인 비주얼. 저도 모르게 코 근처로 올렸던 손등을 내렸다. 태양빛이 부셔선지 아님 어젯밤 애타게 울어선지 눈꺼풀이 부어 완전히 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리한 눈빛이 과학수사대 조끼를 입은 남자에게 향했다.
"신장으로 얼추 가늠되는 나이가..?""아. 스물 둘에서 못해도 다섯... 성별은, 보시다시피 여성이고요."
흉부를 보기 전까진 그것도 구별하지 못했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져 시뻘건 두피와 함께 벗겨져 있고 얼굴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어디까지가 코고 어디부터가 입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구강구조도 무너졌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참아내던 민혁은 결국 미간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찬 공기와 알싸한 피 굳은 내가 났다.
"애쉬그레이. 요즘 남녀 안 가리고 유행하는 컬러에요. 그래도 눈에 띄는 염색을 했으니 이웃주민들한테 물어보면 어디서 봤던 사람인지 아닌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알겠습니다.""저건 증거품인가요?""아, 조금이라도 혈흔이 남아있는 건 모두 국과수로 보냈고 저건 두번째 운반차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피해자 소지품인 것 같은데...""잠깐 보고 저희가 전달해도 될까요?""예 그러십쇼."
하얀 면장갑을 끼고 클러치를 들었다. 명함지갑과 립글로스, 교체용 베터리. 어떤 잔영이 남았을지 기대도 안 된다. 분실된 휴대전화의 위치추적을 맡기고 은밀히 경에게 건넸다.
지호가 하지 말랬는데... 그래도 발견부터 쇼킹한 이 사건에 뭐라도 도움이 돼야지 싶어 고민을 마쳤다. 명함지갑에선 별 건질 잔영을 찾지 못하고 립글로스 뚜껑을 잡았다. 죽기 직전의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살해당할 때 지니고 있던 물건은 아니다.그러다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맞는 건지 살짝 갸웃했다. 왜? 입모양으로 묻자 경은 얼떨떨하게 눈만 깜빡였다.
"형.""어. 뭐 보이는데?"
수색대원들에게서 떨어져 구석진 곳으로 왔다. 멍하게 있던 경이 일단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시선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찝찝한 표정으로 웃었다.
"심장이.. 왜 이렇게 뛰지?"
현장에서 그래선 안되는 걸 알지만, 행복한 웃음이 나왔다.




그냥 두근거리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슴 밖으로 터져나올듯이 쿵쾅거린다. 머리와 속은 멀쩡하니 약이나 술에 취한 건 아닌 것 같다. 아리송하게 서있다 지퍼백에 담아, 국과수 대원이 들고 지나가는 스텐레스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심장이 뛴다고?"
수첩을 들고 묻자 끄덕였다. 가슴에 주먹의 엄지를 올렸다.
"막... 미친듯이 뛰는데. 어디 클럽에 가있었나? 화장실 거울에 비친 인테리어도 화려했고, 볼륨이 높아서 심박수가 높아지는 경향도 있고 또 거기서라면 술도 좀 했을거고...""그래서 두근거리는 거야? 곁에 누구 없었어?""다 그냥 여자... 혹시 누굴 상상하고 있었을까? 짧아서 그건 못 봤는데.""기억 좀 해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집중하라며 두 손으로 경의 머리를 쥐었다. 어어.. 민혁의 동공을 타임머신처럼 보며 기억을 되짚고 있는데 탁, 그 손이 채여졌다.
"안녕?"
지호다.
몇 번을 하고 이런저런 신세계를 겪어도 다음날 아침만 밝으면 화악 부끄럼이 올라오는 게, 먹튀폴리스 당최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아 또 멍해졌다. 민혁이 넌 꺼지라며 팔로 걷어버리고 다시 경의 얼굴을 잡자 지호가 어유 왜 남의 것 건드시냐며 훼방을 놓았다. 두어 발짝 물러나 퍽 따졌다.
"넌 바쁘지도 않냐? 왜 이런 데 어슬렁거려?""내가 바쁘면 너흰 엄청 바쁠걸...""시끄럽고, 지금 중요한 얘기중이니까 얼른 가.""이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려나..?"
운 떼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호는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을 빙글 돌려 보여주었다.
"신희철, 45세. M그룹 상무이사.""...그게 왜.""우리한테 쫓기고 있어. 과감하게 먹튀를 시도하셨거든."
재밌다는 듯이 말하자 소심하게 정신을 차린 경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짓을 하며 민혁의 손을 잡아 내렸다. 어젯밤 애타게 저를 찾던 하얀 손. 그가 부끄러워하는 게 귀여워 속으로 웃던 지호는 거기서도 기어코 경을 빼내고 까딱 폴리스라인을 고갯짓했다.
"물건이 저기 누워계시네."
민혁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너 그걸 말이라고...!"
조용히 욱하는 그의 가슴께를 진정하라는 의미로 민 경이 지호의 팔을 잡아 골목 한 구석 깊숙히로 데려갔다. 그림자처럼 서있던 유권은 말없이 민혁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에 관해선 거리낌없던 그가 제 앞에서 조금이라도 주춤하는 낌새를 보이자 민혁은 성숙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눈빛에 스쳐간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상처입는건, 알고 있었다.
"물건?"".....""죽은 사람 앞에서 참 좋-은 말 한다."
유권이 한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심지어 입도 한번 벙긋하지 않았음을 아는데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범인도 범인이지만 저 집단은 정말 누구의 말대로 필요악이다. 앞에 붙은 필요 자만 없었어도... 하긴, 그래봤자 송사리가 어떻게 고래를 잡겠냐마는.
"....."
아무 말 없는 그를 뒤로 하고 수색대원 틈으로 섞여들어갔다.



"상호 껄끄러운 선은 넘지 않을게. 아는 게 있으면 말해줘."
그를 다루는 데 도가 튼 경은 이제 낯뜨거움은 한쪽으로 치우고 질문을 했다. 집중한 모습이 좋아 가만 감상하고 있던 지호가 팔짱을 끼고 담벼락에 기댔다.
"텐프로에 있던 직원이야. 신이사가 지명해서 거진 3년간 독점했던 언닌데 이번에 우리 쪽으로 넘기기로, 마담하고 신이사하고 합의를 봤거든.""...너..도?"
당황했다. 이렇게 깊숙히... 뭐, 이 정도가 깊은 건지 아님 겨우 발만 담근 건지 지호의 기준에 재보지 않고선 모르겠으나, 사람이 오가고 돈이 움직이는 현장에 반대파로 접근하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헤이화 사건과는 분야가 다른 위치에 서있다. 지겹지도 않은지 한쪽은 경찰, 한쪽은 조폭으로. 뜬금없이 이 상황이 오리지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첫만남 이래의 향수(鄕愁)와도 같은 냄새가 났다.
"응. 나도. 나래봤자 내 밑의 김유권 밑의 누구 밑의 누구가 대신했겠지만 최종적으론 그렇지? 우리도 주기적으로 뉴 페이스를 들여서 업소 물을 높여놔야 하니까 괜찮은, 어... 좋은....""내 앞에서 물건이란 말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보려는 마음은 고마운데, 지금은 네가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허락할게.""땡스. 고 예쁜 물건이 튀었어. 신이사 손 잡고, 내 돈줄도 잡고.""선금을 줬어?""고분고분하던 영감이라 경계를 빠릿하게 하지 않았는데 그게 실수였지. 지금 신이사는 행방이 묘연해. 밀항에 은닉까지 여러 구석으로 찾고 있긴 한데, 삥 순환의 핵심포인트인 저 언니가 저렇게 됐다 이거야.""그래... 야 근데, 그 언니란 말 좀 안 쓰면 안돼?""왜?""몰라. 네가 하니까 야해." "오잉.. 왜 그럴까...""아 그래서. 너는 그 신이사란 사람도 찾아야 되고 그 사람이 가져간 네 돈도 찾아야 되고 그 여자도 찾아야 하는데, 셋 중 둘은 씨나락 까무룩이고 마지막 하나를 누군가에게 뺏겼다?""응. 찾아주세요~ 경찰관님.""시끄러.""조용한데 시끄럽대..."
퉁명스럽게 흘기는 척 장난을 쳤다. 조금 갑갑한 표정으로 고민하다 영 꼬인다는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이놈이 작정하고 그런건지, 마지막으로 이체된 돈이 찜찜하게 딱 인천항 밀항 값이야. 그룹별로 상대해 주는 금액이랑 선박이 있는데 신이사 클래스는 그 정도 값만 치르거든. 우연일 순 있지만. 거기다 지가 원래 갖고 있던 돈 싸그리 모아서 튀면... 쿵떡쿵떡 잘 살고도 꽤 멀리까지 터 잡을 수 있을걸? 아라사(러시아) 정도로."".....""아. 짜증나. 양치기한테 양 뺏긴 기분이야. 자정부터 무려 아침 7시까지 줄기차게 쫓고 있다 보고받았는데. 놓쳤어."
뒷머리를 북북 긁자 곰곰히 생각하던 경이 그와 똑같이 등을 기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피해자 주변부터 파야겠어. 살해를 넘어 폭행으로 저렇게까지 훼손할 정도면 보통 원한 관계거나 그런 오더를 받은 청부살인 쪽인데,""청살인 아냐. 내가 알아봤어.""....."
경찰의 일이 하나 줄었다. 고심하며 눈살을 좁혔다.
"지문이 다 훼손당했어. 송곳이나 칼로 긁어낸 것 같아. 마무리로 염산까지 부었는지 완전 밀려있고.""깔끔하네. 전문범이거나 사이코패스...&nbsp...아님 강박증?""면식범 비면식범 가늠은 못하겠고...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신원파악을 막으려 한 이유가 뭘까. 진짜로 작정하고 한 것 같은데. 살해 장소도 저긴 아닌 것 같아. 흔적이 없어.""글쎄... 누굴까나-? 얼굴 한 번 보고싶다.""조질 생각 하지 마. 우리가 잡을 거니까.""안 말려."
물건을 양도받지 못한 데 대한 보복을 할 생각은 없는데 꼬리를 잡다보니 얼결에 이 곳으로 오게 돼서 그조차 성가신 모양이다. 생각에 잠긴 그를 향해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야, 여자가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면서 심장을 두근거릴 일이 뭐가 있을까?""심장? 뭐, 멋진 남자랑 눈을 맞췄다거나. 클럽에서 오늘밤 누울 자릴 찾았다거나. 아님 술 마시고 춤춰서 숨이 많이 가빴다거나.""거..의 지하로 내려가는 분위기지?""그렇지. 큐브 가볼래?""큐브? 그게 뭐야?""김희연 일하는 텐프로.""....."
피해자 이름이 김희연이었나보다. 거기다 최상층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입 안에서 나는 플라스틱 맛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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